지난 전시 기록 · 구상나무 온라인 전시 · 양화선 작가 × 백년숲 × 지리산포럼
2026.10.2–10.10 열린 온라인 전시의 기록 · 양화선 · Instagram @yanghwaaa
구상나무의 생명은 인간과 다른 시간의 속도로 흐른다.
한 뼘 자라는 데 수년이 걸리고,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삶의 흔적을 새겨 나간다.
죽음마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찾아온다.
그러나 이 느린 생의 리듬은 인간이 만들어 낸 급격한 기후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을 피해 이동할 수 없는 구상나무는 태어난 자리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인간에게는 느리게 느껴지는 시간이 나무에게는 삶을 이어가는 속도일지도 모른다.
이 작업은 서로 다른 시간의 속도로 살아가는 인간과 나무의 관계를 바라본다.
전시 기록
전시는 끝났고, 이 페이지에는 전시 화면의 기록과 서문만 남겨 두었습니다. 작품 원본은 작가의 Instagram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작은변화베이스캠프 들썩(남원시 산내면 천왕봉로 725)에 1점, 산내청년공간 틈새(산내면 대정길 132)에 5점을 전시했습니다.
산내청년공간 틈새에서 열리는 지리산포럼 참여섹션 「기후위기 이면: 나무와 사람, 서로의 안부를 묻다」에서 양화선 작가가 작업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리산포럼 2026 「변화이면」 · 10.1(목)–10.4(일) · 남원시 산내면 일원. 일정과 장소는 지리산포럼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시 서문
양화선의 회화 앞에서 우리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마지막을 목격하게 된다. 1983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과 런던을 거쳐 다시 제주와 춘천으로 이동한 작가의 여정은, 한 그루의 나무가 뿌리를 쉽게 옮길 수 없듯 현대인이 정착할 장소를 찾지 못한 채 떠도는 생의 기록에 가깝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9년간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작가는 도시재개발의 물결 속에서 예술가 공동체가 끊임없이 밀려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작업실을 구해 놓으면 곧 건설 크레인이 등장했고, 예술가들은 메뚜기처럼 도시 곳곳을 전전해야 했다. 이 경험은 작가에게 ‘안전지대’라는 화두를 남겼다.
2008년부터 이어진 대표작 〈세이프 존(Safe Zone)〉 시리즈는 이 질문에 대한 시각적 응답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준 수영장의 파란 물결 위로, 제주 바다와 방풍림의 기억이 겹쳐진다. 불투명한 청록색의 화면은 섬에서 성장한 이가 무의식적으로 간직한 색채 기억처럼 보인다. 귀국 후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예전 같지 않은(Back Here Not the Same)〉에서는 도시재생이라는 명목 아래 사라지는 서울의 공간을 기록했고, 2023년 〈낮이 너무 짧아〉에서는 팬데믹 봉쇄 기간 동안의 실내 공간과 식물, 그리고 소유와 행복의 관계를 탐구했다.
2024년 전시 〈플립턴(Flip Turn)〉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수영 기술에서 차용한 제목처럼, 작가는 화면의 구도와 구조를 뒤집어 보기로 했다. 그간 철저하게 통제하던 구도를 해체하고, 화면의 요소들을 상상 속의 하늘에 띄우듯 자유롭게 흩어놓았다. 기하학적 도형이 확장된 추상 화면에서 수영장은 사라졌지만, 파스텔 톤의 푸른 색조와 반복적 붓질의 리듬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양화선은 이 실험을 통해 안전함이 공간 자체가 아니라 반복되는 루틴, 자신의 호흡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캔버스 위에 쌓아 올려 온 붓질의 두께가 작가를 지탱해온 안전지대였던 셈이다.
2021년 새탕라움에서 열린 전시 〈순간적인 이성착오(A Momentary Lapse of Reason)〉는 무심코 한 행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버려지기 위해 포장된 화분 속 구상나무를 그렸고, 한편에서는 태국에서 식물원을 운영하는 예술가 NET의 ‘식물 키우기’ 영상을 상영했다. 전시 종료 후 전시장에 놓였던 화분을 관객에게 나눠주는 프로젝트도 진행됐다. 정착하지 못할 것 같던 식물들은 화분과 영상을 거쳐 제주와 태국, 전시장과 관객의 집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자리를 모색했다. 이 지속적인 이동은 작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구조적 조건이다.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는 경제적·사회적·생태적 압력 속에서 직접적으나 간접적으로 난민이 되어가고 있다.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은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화두가 됐다.
이 개인전을 계기로, 작가의 시선은 도시와 환경에서 한라산 정상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내몰림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반도 고산지대 특산종인 구상나무가 집단 고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발 1,000미터 이상의 능선을 따라 한때 울창했던 숲은 마른 고사목만 남은 묘지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구상나무의 소멸은 통계로 보면 더욱 비극적이다. 1918년 1,168헥타르였던 구상나무 숲은 2021년 606헥타르로 줄어 100년 만에 절반 가까이 소실되었다. 특히 2006년 이후의 연간 소실률은 그 이전보다 4~8배까지 증가했다. 2017년부터 2021년 사이에는 12,957그루가 고사했다. 한때 세계 최대 군락지였던 진달래밭의 고사율은 90%에 달하며, 2019년 산림청 조사에서는 한라산 구상나무의 28.2%가 이미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후변화는 여러 경로를 통해 구상나무를 압박한다. 2월 기온 상승과 3월 강수량 감소는 봄철 가뭄 스트레스를 심화하고, 겨울 적설량 감소는 이듬해 봄의 수분 부족으로 이어진다. 천근성 뿌리를 가진 구상나무에게 이는 치명적이다. 5월 개화기에 발생하는 이상 저온은 수정을 방해한다. 2021년 연구에서 분석한 30개 솔방울 중 정상적으로 발달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고, 97%는 기형이거나 충해를 입었다. 2020년 나무당 평균 69개였던 솔방울은 2021년 34.8개로 절반가량 줄었으며, 결실을 맺는 개체 수도 65% 감소했다.
자연 재생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2016년의 조사에서는 125개 조사구 어디에서도 직경 5센티미터 이상의 치수를 발견하지 못했고, 36센티미터 이상의 묘목도 없었다. 평균 묘목 높이는 4.4센티미터, 평균 수령은 3.2년에 불과하다. 연간 성장률은 첫 10년 동안 약 1.2센티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어린 나무들은 제주 노루가 먹어치우고, 조릿대가 햇빛을 가려버리고, 곰팡이 같은 병까지 생기며 여러 위험에 동시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2011년부터 구상나무를 멸종위기종(EN)으로 분류했다. 서식 면적은 약 12제곱킬로미터까지 축소되었고, 현 추세가 지속될 경우 10~20년 내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는 기능적으로 멸종할 것으로 예측된다.
구상나무의 생명은 인간의 시간 감각과 다른 차원에서 흐른다. 씨앗이 떨어져 첫 3년 동안 묘목의 높이는 고작 10센티미터 남짓이다. 한 뼘 자라기까지 수년이 걸리고, 수십 년·수백 년에 걸쳐 천천히 성장의 흔적을 새겨나간다. 죽음조차 빠르게 오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마른다. 양화선은 이 느림을 인간의 인식 바깥에서 작동하는 또 다른 시간의 양태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극도로 느린 생의 리듬은 지나치게 빠른 기후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구상나무는 고도를 따라 이동할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서식지를 잃고 있다. 한라산 정상부는 더 이상 피난처가 없는 막다른 지점이다. 뿌리를 뽑아 움직일 수 없는 나무는 결국 태어난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양화선은 고사한 구상나무를 화면에서 거꾸로 뒤집어 뿌리로 그려낸다. 화면 속 뿌리의 네트워크는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그 사이의 흙이 관계를 매개한다. 이는 나무와 나무를, 산과 산을 잇는 생태적 연결성을 시각화한 것이다. 뿌리의 건강이 지상의 생명을 지탱하고, 병든 뿌리는 전체 생태계를 약화시킨다는 생태학적 사실을 작가의 회화는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의 그림은 뿌리 자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상호의존과 존속, 기억과 지속에 대한 명상이다.
이번 전시에서 양화선은 강원도와 제주에서 죽은 구상나무라는 물질이 향이라는 비물질로 전환되는 과정을 다룬다. 향은 불교 전래 이후 한국의 정신문화에서 명상과 집중, 비물질적 존재와의 연결을 상징해왔다. 나무가 불을 거쳐 탄소나 연기로 변하는 과정은 죽음에 영적 의미를 부여하는 연금술적 변환이다. 멸종 위기에 놓인 구상나무로 만든 향은 보이지 않는 것을 향기와 연기로 가시화한다. 연기의 덧없음은 불교의 무상 개념을 상기시키며, 미래 세대가 야생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종의 감각적 기억을 대신 남긴다. 숯은 나무의 탄소를 안정된 형태로 보존하며 죽음 이후에도 보호 기능을 지속한다. 양화선은 이 변환을 통해 사라진 종과 한국 문화 전통을 함께 기린다.
양화선의 작업이 상실을 막아낼 수는 없다. 구상나무는 계속하여 고사할 것이며, 도시의 공간은 재개발될 것이고, 예술가들은 여전히 밀려날 것이다. 양화선의 작업은 이러한 상실이 무기명으로 사라지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다. 그는 사라지는 것들의 ‘마지막 기록’을 남기며 목격자가 되고, 애도의 감각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전환한다. 이전 작업이 젠트리피케이션 이전의 도시 공간을, 팬데믹의 단절된 시간을 기록했다면, 구상나무 연작은 종의 멸종을 기록한다. 이 기록행위는 생태계가 겪는 고통을 시각화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생태적 감각을 다시 깨운다. 뿌리는 얽히고설키며 안과 밖으로 뻗어 나간다. 하나의 나무 아래에 존재하는 뿌리의 네트워크는 결국 흙과 산, 더 넓은 세계의 연속체로 이어져 있다. 나무와 산이 서로를 지탱하듯 인간과 환경 역시 하나의 생태계로서 서로를 지탱한다.
2025년 12월, 전 세계가 구상나무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를 집 안에 들이는 시기에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뀐 구상나무가 제주의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다. 매년 미국에서만 약 천만 그루의 구상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로 판매된다. 한국 한라산에서는 멸종 직전에 몰린 나무가 서구의 거실에서는 화려함과 풍요의 상징이 된다. 1920년 영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이 신종으로 발견한 이후, 구상나무는 전 세계 원예 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종 중 하나가 되었다.
양화선은 이 극적인 대조에 주목한다. 구상나무가 가장 화려하게 소비되는 시간과 소멸의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서구의 거실에서 반짝이는 장식으로 축복의 상징이 되는 바로 그 순간, 한라산 정상에서는 같은 종의 나무들이 조용히, 천천히,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진다. 가장 밝은 빛과 가장 깊은 어둠이 동시에 놓이는 시간, 번성과 멸종의 역설이 2025년 겨울의 풍경이다.
양화선의 작품들은 뿌리 내릴 수 없는 자들의 이야기다. 나무의 이야기이자 인간의 이야기이며, 기후위기의 이야기이자 이주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결을 시도하고 관계를 복원하며 마지막 남은 신경을 어루만지는 예술의 이야기다. 크리스마스트리로 꾸며진 구상나무가 세계의 집 안을 밝히는 바로 그 계절, 이 전시에서는 사라져가는 구상나무의 뿌리를 마주한다. 생성과 소멸, 축복과 애도, 번성과 사라짐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시간이다.
양화선은 제주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 학사와 동 대학원 석사를 마친 뒤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석사를, 이스트 런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개인전으로는 〈Flip Turn〉(페이지룸8, 2024), 〈Daytime is Way Too Short〉(라흰 갤러리, 2023), 〈A Momentary Lapse of Reason〉(새탕라움, 2021)이 있다. 2018년 블룸버그 뉴 컨템포러리즈를 포함해 여러 국제상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제주현대미술관, V&A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안부를 잇다
이 나무의 안부가 궁금해진 적 있나요?
사라지고 위태로운 것은 나무뿐일까요?
구상나무에서 시작한 안부는 산불과 큰비, 폭염을 겪는 마을과 이웃에게로 이어졌어요. 이 전시를 함께 연 지리산 하이디원정대의 기록과, 그 뒤를 잇는 안부숲에서 만나 보세요. 알고, 돌보고, 누려요.